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치원/지역별 현황/수도권 (문단 편집) === [[양주시]] === 1981년 설립된 송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최초이다. 양주시 자체로만 보면 [[울릉도]]보다 유치원이 늦게 생겨났으나, 송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양주시가 아직 양주군이었던 시절에 개원되었다. 특이하게 시내보다 장흥면 교현리[* 흔히 송추라고 부르는 그 곳이다. 과거 [[방위병]]이 있던 시절 가장 힘들었다는 '송추방위'가 여기에 있다.]에 유치원이 먼저 들어왔다. 양주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75년]]~[[1977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age(1975-12-31)]~[age(1975-01-01)]세이다. 시내 최초의 유치원은 같은 해 3월 10일에 설립된 유양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그 전에는 양주에 사는 아이들이 [[경원선]] 기차를 타고 의정부나 동두천의 유치원으로 가야 했다. 양주군이 서울 [[도봉구]]와 [[노원구]], 중랑구 묵동, 신내동, 망우동, 상봉동, 중화동까지 관할하던 시절에 최초로 개원된 [[의정부성당]] 부설 [[성모 마리아|성모]]유치원은 개원 9년 만에 양주군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독립하면서 의정부시 관할로 넘어갔고, 동두천성당 부설 효성유치원은 소재지인 양주군 동두천읍이 1981년 동두천시로 독립했다. 사립유치원은 17곳 있는데 시내, 백석읍, 남면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역시 남북분단만 아니었으면 (이미 시가 되었을) [[강원도]] [[철원군]] 시가지가 [[연천군]], [[동두천시]]를 넘어 여기까지 확장되어, 유치원이 10년은 일찍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1960년대 6만 4,410명[* 1980년 남양주와 분리된 직후에는 7만 3,780명.]이었던 인구가 23만 359명으로 늘면서[* 양주시의 읍면동별 인구는 회천지구 11만 2,819명, 시내 5만 5,746명, 백석읍 2만 6,431명, 광적면 1만 1,948명, 장흥면 1만 442명, 남면 7,004명, 은현면 5,969명으로 전방 지역인데도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만약 남면이 연천군 관할이었다면 22만 3,355명이었을 것이다.] 사립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행정구역 개편의 피해자. 행정구역 개편만 아니었으면 양주시 인구가 279만 9,235명 (남면 제외 시 279만 2,231명)까지 늘어나고[* 무려 [[대구광역시]]보다도 인구가 많다. 참고로 대구광역시의 인구는 243만 2,883명이다. [[일본]]의 [[도도부현]] 중 35개, [[미국]]의 주 중 15개가 여기보다 인구가 적다.] 양주 최초의 유치원은 1950년대까지 기록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를 보면 조씨가 강씨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양주의 상위 10개 성씨가 김이박최정조윤강장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소예은]]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